인터넷을 처음 경험했을 때
윈도 3.1 시기부터 15년도 넘게 윈도 PC를 쓰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나의 첫 인터넷 경험은 윈도 PC가 아닌 매킨토시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는 아직 애플의 새로운 신화를 열어젖힌 아이맥 G3가 나오기도 전인 1996년 즈음이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를 처음으로 월드와이드웹에 인도한 컴퓨터 기종은 애플 매킨토시 퍼포마 6300 데스크탑이었다(겨우 기가바이트 단위의 하드디스크가 나오고 8~16MB의 시스템 메모리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는 이것도 ‘최신 기종’에 속했다). 집에 있는 ‘내 컴퓨터’는 아니었고 학교 컴퓨터실에 설치된 공용 컴퓨터였지만 어쨌든 이 매킨토시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다.

당시 쓰던 웹브라우저는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 Google은 있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 매킨토시에서 구동되었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버전이 아마 2.xx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2.0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브라우저 시장을 잡아먹기 이전에 사실상 확고부동한 선두를 유지하던 소프트웨어였다), 당시에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 정도를 빼면 대학 서버 중심의 개인 홈페이지나 그 때 막 생기기 시작했던 기업 소개 웹사이트 정도로 매우 미미했고 더욱이 국내 웹사이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그 때만 해도 PC통신이 ‘주류’를 차지했고 인터넷은 그 존재가 겨우 국내에 소개되는 형편이었으니)

1996년 당시의 야후! 웹사이트 모습.
Google은 관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MSN을 PC통신 비슷한 서비스로 키울 생각만 하고 있었던 시기이니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를 통해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검색 사이트는 자동으로 인터넷을 탐색하여 새로운 페이지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로봇이 비교적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사람들이 직접 웹사이트를 분류하여 정리한 색인을 뒤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래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웹사이트 수를 감안하면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다). 지금은 비참하게 몰락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알타비스타나 익사이트 등도 이 시기에는 야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 웹 페이지의 절대량이 매우 적었고 그나마 90% 이상은 영어로 된 문서들로만 가득한 인터넷이었다.

1997년 초의 핫메일 초기 페이지.
그 당시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싶으면 핫메일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으면 지오시티즈를 택해야 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거기에 속한 개인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발급하기가 복잡했으며 ‘전자우편’ 하면 기껏해야 같은 PC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것 정도를 떠올리던 시기에, 그것도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발급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참고로 다음이 한메일을 만든 시점은 핫메일 출범보다 11개월 가량 늦은 97년 5월이다). 지오시티즈는 인터넷에도 마치 미국의 행정 구역처럼 질서정연한 ‘사이버 주소 체계’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http://www.geocities.com/SiliconValley/Pines/0000′ 식으로 복잡한 주소의 무료 홈페이지를 발급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접속하기조차 이루 불편할 데 없지만 그 때는 이것이 획기적인 서비스였다(국내에 홈페이지 만들기 붐이 일기도 한참 전의 일이니까).

싸이월드의 일촌 비슷한 개념을 이미 90년대에 실험했던 식스디그리스닷컴(SixDegrees.com).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없고 느리기만 한 인터넷이었는데(고작 1메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다운로드받는데 5분 이상 걸리고, 기껏해야 개인들이 호기심에 만들어놓은 홈페이지나 썰렁한 기업 소개 페이지 정도나 보는 정도였던) 그 때 처음 조우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기억이 상당히 ‘낭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영어로 되어 있는 페이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의 ‘세계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꿈,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간에서 스스로를 보다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처음의 경험을 특징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메일 계정에 들어오는 메일 100개 중 90개 이상이 스팸메일인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의 이메일은 태평양이나 유라시아 건너편에서 역시 세계 반대쪽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가득찬 누군가로부터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빠른 우편’ 같은 것이었다. 조악하게나마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면 가끔 그 곳에 우연히 들르는 누군가로부터 친근한 어조의 인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비아그라나 가짜 학위증서, 단백질 보충제를 판다고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뿌려대는 로봇은 없었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스파이웨어, 온라인 사기, ‘악플’ 등의 병리적 현상은 물론이고 국가, 언어별로 분리된 인터넷, 웹 표준 준수 여부, 블로그, 비디오 공유 사이트 등을 그 당시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 10여 년 사이에 전화선 모뎀과 초보적인 HTML만으로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많은 것들이 실현되었지만 인터넷이 점차 지겨워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첫경험’ 당시의 꿈이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을 통해 지구상 다른 어딘가 사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메일을 쓸 때 손으로 쓰는 편지만큼 한 줄 한 줄마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마음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이 국가, 성별, 계층, 종교, 지역 등의 배경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글쎄,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환상이 끝내 현실로 귀환할 미래의 어느 날을 애써 기다리는 것일까?